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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냥이의 행복한 하루 : 브루스 초상화에 담긴 의미'다음 생에는 브루스로 태어날래요'
  • 컬럼니스트 주호석
  • 승인 2017.08.0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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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은 브루스 초상화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불교의 윤회설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인간은 깨달음을 얻어 열반의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한 계속해서 다시 태어남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현재 살고 있는 세상을 이승, 다음에 다시 태어날 세상을 저승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저승에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느냐는 이승에서 선하게 사느냐 악하게 사느냐, 즉 그 사람이 이승에서 행한 업(業)에 달려 있다고 한다. 이승에서 착하게 업을 쌓으면 좋은 세상에 다시 태어나고 그렇지 못하면 가축 등으로 다시 태어나 괴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윤회설이다. 

그런 윤회설을 믿건 안 믿건 사람들은 일상 생활 속에서 무의식중에 다음 생에는 지금보다 더 행복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길 바라며 살아간다. 예를 들어 지금 돈이 넉넉지 못해 고생하는 사람들은 다음 생에는 돈 많은 부자로 태어나길 바라고 몸이 건강치 못한 사람은 다음 생에 튼튼한 사람으로 태어나길 바라는 것이다. 

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저승에 가시면 극락왕생하시어 더 이상 고생하시지 말고 편안하게 사시옵소서' 하는 염원을 하기도 한다. 인간의 생명이란 유한하고 인생이란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이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다음 생에서 이뤄보고자 하는 희망을 가져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희망이 이뤄질지는 누구도 확신할 수 없지만 말이다. 
 

자고싶을 때 아무데서나 자는 브루스는 마냥 행복해 보인다


우리 집에서 2년 넘게 함께 지내고 있는 대학생이 있다. 성실하고 성격이 온화한 편이어서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사이다. 특히 그 학생은 아내하고 내가 밤에 늦게 들어온다거나 여행 등으로 며칠간 집을 비우는 경우 고양이 브루스를 잘 챙겨주어서 더욱 고마운 학생이다. 그 학생 역시 고양이를 좋아하기도 하거니와 빈틈이 없는 성격이어서 우리가 마음 놓고 브루스를 맡기고 밖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특히 우리가 뉴욕 등지로 장거리 여행을 가는 경우 아침 일찍 브루스를 밖으로 내보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밤에 귀가하는 것까지 꼼꼼하게 챙겨주고는 한다. 밤에 브루스가 귀가할 시간이 되면 우리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귀가 여부를 확인하는데 학생이 '브루스님 드디어 귀가하셨음' 하고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오면 마음 놓고 잠자리에 들게 된다. 

어느 날 함께 브루스 얘기를 하던 중 그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저는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꼭 브루스로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그 순간 아내하고 내가 폭소를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다음 생에서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을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고양이로 태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 '브루스'로 태어나고 싶어 한 것이다. 

아내가 '아니, 그게 정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이 세상에 브루스만큼 행복한 존재가 어디 있겠어요 반문을 했다. 그러면서 브루스가 행복해 보이는 이유를 줄줄이 열거했다. 가족은 물론 브루스를 처음 보는 사람들까지도 이뻐해 주고 사랑해주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고 맛있는 먹이를 항상 넘쳐나게 챙겨주니 먹는 것 걱정할 필요 없고 온 동네 정원과 숲속을 자기 운동장 삼아 놀 수 있어 건강 걱정할 필요 없으니 얼마나 행복하겠느냐는 것이다. 

브루스는 또 누가 뭐라든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스트레스받을 일 없고 언제 어디서든 자고 싶으면 잠을 자고 사냥을 하고 싶으면 사냥을 할 수 있는 자유의 몸이니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나 주객이 전도된 듯 주인이 브루스를 왕처럼 모시고 사는데 이보다 더 부러운 삶이 존재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브루스의 눈망울 속에는 근심 걱정이 하나도 없는 듯하다


학생은 아마도 자신이 현실적으로 겪고 있고 또 앞으로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하면서 그런 현실과 전혀 무관해 보이는 브루스가 한없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공부에 대한 중압감, 취직에 대한 걱정,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향후 결혼 그리고 자식 양육 문제, 학교 졸업 후 맞이하게 될 치열한 생존경쟁 등 앞으로 자신이 살아가야 할 인생이 고난의 연속일 것으로 예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은 브루스의 삶이 너무나 부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하긴 나 자신도 브루스와 함께 지내면서 브루스의 삶이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정신적으로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브루스를 바라보며 과연 인간이 브루스 같은 동물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자주 가져본다. 어쩌면 인간 자신이 동물보다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동물을 제대로 모르기에 하는 말인지도 모른다. 그 학생처럼 동물을 부러워하는 인간은 있어도 인간을 부러워하는 동물은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브루스 역시 저승에서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듯싶다. 오히려 끝없는 욕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의 삶이 브루스의 눈에는 한없이 불행해 보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 학생이 다음 생에 브루스로 태어나면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며 '이 불쌍한 인간들아, 왜 그렇게 살고 있니...' 하고 측은지심을 갖지 않을까 싶다. 

그림에 소질이 있는 그 학생이 브루스 초상화를 하나 그려주었다. 브루스와 똑같이 그린 그 브루스 초상화에는 찌든 인간들의 얼굴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무척 행복하고 여유로운 표정이 담겨 있다. 그 학생이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어 하는 고양이의 모습이 바로 그 브루스 초상화인지도 모른다.

 

컬럼니스트 주호석  genman201@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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